닮고 싶은 사람, 바라는 배우, 대변하는 여자. 이다희는 우리 시대의 이상형이다.



폭설이 예고된 날. 이다희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헤어 커트를 하고 있었다. 나를 보자마자 이다희는 하얀 가운 아래로 가늘고 긴 손을 스윽 내밀고 “오! 반가워요!” 하며 악수를 청했다. 톤 다운된 붉은빛 네일이 선명했다. 같은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는 그녀만의 의식처럼 느껴졌다. 가운을 입기 전, 클래식한 코트에 청바지 차림이었던 그녀는 평소 스타일에 관해 “해보지 않았던 느낌으로 다양하게 시도하는 걸 선호해요”라고 말했다.
<보그> 촬영을 위해 1980년대를 컨셉으로 스타일링하고 호라이즌에 선 이다희는 그 시절 지아니 베르사체 광고판에서 막 튀어나온 듯 보였다. 금빛 액세서리를 여러 겹 겹쳐 목에 걸더니 디스코가 생각난다고 그녀는 말했다. 나 역시 호황이나 불황과 관계없이 대책 없는 긍정성으로 터질 것 같았던 금빛 그 시절을 바로 떠올렸다.
이다희는 얼마 전 새롭게 꾸민 드레스 룸에 대해 들려주었다(요즘 이다희의 인스타그램에 포토 존으로 등장한 곳이다). 벽과 바닥, 가구는 온통 하얀색이고 천장에는 샹들리에가 빛난다. “얼마 전 이사했는데 워낙 옷이랑 액세서리를 좋아해 모두 진열해 꾸미고 싶었어요. 샹들리에는 당연히 제가 직접 돌아다니며 골랐죠.”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의 인테리어 기획자는 이다희 본인이다. 가족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고 그녀는 그 큰 눈을 반짝이며 말한 뒤, 인테리어 키워드를 꼽아달라는 요청에 화려함, 클래식, 컬러 세 가지를 골랐다. “제 방은 분홍색, 화장실은 민트 컬러예요. 방마다 테마가 있어요. 요가 룸 옆의 바는 바비 룸처럼 핑크 스트라이프로 꾸몄고, 노래방은 코발트 블루 색깔로 단장했죠. 아, 실제로 보여드리고 싶군요(웃음).” 이다희는 날씨가 풀리면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도 말했다. 물론 집 안에 마련된 코발트 블루 노래방이다. 여전히 코로나 시대였다.
2월 1일 첫 방송하는 <루카: 더 비기닝> 티저에서 이다희는 벽 사이를 점프하며 등장한다. 말 그대로 날아간다. 거대한 음모에 맞서는 스펙터클 추격 액션극에서 형사 ‘구름’을 맡았다. “배역 이름부터 호감으로 다가왔는데 내용도 캐릭터도 너무 좋았어요. 그동안 <뷰티 인사이드>와 <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(이하 검블유)>에서 무척 화려한 역할을 맡았는데 구름이는 그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활동적이에요.”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물이 어떠냐고 묻자 자기 스타일에 맞다고 명쾌하게 답했다. “말과 행동이 같은 게 제일 좋지만 말이 행동보다 앞서는 사람보다 낫죠.”
이다희는 구름을 위해 캐릭터에 변화를 주었다. “그동안 의상은 물론 메이크업도 내 모습을 감춰가며 색을 덧입혀 캐릭터를 만들었다면, 구름이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. 잘못하면 형사 연기가 식상하고 재미없어 보일 수도 있으니 내 모습을 최대한 반영했어요.” 메이크업은 거의 하지 않았고 실제로 입던 티셔츠, 스타일리스트의 예전 옷을 돌려가며 입었다. 카키색 야상, 라이더 재킷, 트렌치 코트를 벗어날 수 없었냐고 묻자 이다희는 깔깔깔 웃으며 동일한 시도를 해봤다고 했다. “뻔한 스타일링을 벗어나고 싶어서 다르게 입어보기도 했어요. 그러면 감독님이 곧바로 말씀하셨죠. 형사들 그렇게 안 입어!(웃음)”
‘한계를 뛰어넘는 액션’이라는 홍보 카피를 달고 있는 <루카: 더 비기닝>에서 우리가 이다희에게 기대하는 바는 신체적으로도 강인하고 자유로운 여자다. 전작 <검블유>에서 유도 선수 출신이라는 설정 아래 야구방망이로 차 유리를 깨부수고 사이드미러를 발 차기로 날려버리는 액션을 선보이며 쾌감을 안긴 바 있다.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다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증명. 정의는 직접 구현한다는 독립성. 최근 한국 드라마 역사의 어떤 캐릭터보다 주체적이었다. 이다희는 차에 올라가 방방 뛰었을 때 짓던 표정을 다시 보이며 흡족해했다. “<검블유> 때 제 액션 신에 만족하면서 액션 잘하는 것 같다고 얘기했거든요?(웃음) <루카: 더 비기닝>이 액션극이라 더 관심이 갔어요. 촬영 때 너무 힘들어 다시는 액션 연기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지만, 기회가 생기면 또 할 거 같아요. 방송을 봐야 알겠지만 촬영 때 가끔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제가 봐도 진짜 시원시원하고 멋지거든요. (웃음) 감독님이 여자 배우들 중에 액션을 제일 잘한다고 칭찬 많이 해주셨어요.”
물론 <보이스>, <손 the guest> 김홍선 감독과 <추노>, <해적> 천성일 작가의 합작이라는 점도 믿음의 한 축이다. “두 분과 작업한 소감은 정말 베테랑이라는 사실이에요. 감독님은 머릿속에 모든 장면을 그려오시나 봐요. 천재인 줄 알았어요. 필요한 장면만 딱딱 찍어서 촬영이 수월했거든요.” 이다희는 상대 배우에 대한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. “김래원 오빠만의 연기가 있어요. 그런 연기를 나만의 색깔로도 해보고 싶었는데 제 나름대로 처음 시도해볼 수 있어 좋았어요. 김성오 오빠는 착하고 배려심 깊고 액션 연기할 때 힘이 굉장히 좋아요. 다치지 않고 잘 나오도록 많이 도와줬고 정신적으로 든든했어요. 그리고 김상호 오빠와 강력반 한 팀으로 나오는데 정말이지 무척 편하게 해주셨어요. ‘호블리’예요. 사랑스러워서 호블리.”
아닌 게 아니라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역시 액션 장면이다. “싸우다가 유리창에 부딪혀 팍 깨지는 순간이 있어요. 안전한 슈가 글라스이긴 하지만 좀 망설여졌는데 대역 없이 그냥 해냈죠. 그런데 그 장면이 굉장히 잘 나온 거예요! 그래서 자꾸 욕심이 나는 것 같아요. 한번은 잘못 넘어져 바닥에 부딪혔는데, 순간 별이 보여 MRI까지 찍었다니까요. 다행히 이상은 없었는데 잘하려는 욕심이 나서 감행하다 보니 다치기도 하고 또 힘들고, 어떨 땐 대기실에서 울기도 했어요. 저뿐 아니라 배우들 모두 엄청난 근육통에 시달렸죠.” 몸을 계속 날려야 하는 상황에서 이다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삼시 세끼를 잘 챙겼다. “보통 드라마 촬영할 때 식단을 조절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진짜 잘 챙겨 먹었어요. 중간중간 스트레칭도 계속해줬고요.”
이다희는 길고 곧게 뻗은 팔다리와 176cm에 달하는 키를 가졌다. 자신의 신체를 그야말로 기꺼이 활용할 때 이다희는 그 자체로 직관적 메시지가 된다. 거리를 뛰고, 누군가에게 반격하고, 몸을 날려 뛰어오를 때 엄청난 엔터테인먼트가 생성된다는 얘기다. “감독님이나 다른 배우들로부터 어떻게 해도 잘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(웃음). 반면 저희 같은 사람이 잘 못하면 엉성해 보여요. 그래도 액션 연기가 잘 맞았어요. 힘들어서 그렇지.” 수년 전 이다희는 키가 커서 맡을 수 있는 배역에 제약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적 있다. 여성 캐릭터가 청순가련하거나 지고지순하기만 하던 시절, 여자 키가 남자보다 커서는 곤란했다. “이제는 전혀 키에 대해서 제약이 없어요. 시청자도, 배역도 다양해지다 보니 저에게 맞는 것이 더 많이 생긴 것 같아요. 요즘은 키 큰 남자 배우도, 여자 배우도 많아요. 그래도 제가 제일 큰 것 같아요(웃음).” 그러더니 화보 촬영 때 둘렀던 스카프를 매만지며 느긋한 말투로 덧붙였다. “오늘처럼 촬영할 때 키가 크니 슬리퍼를 신어도 되지 않냐고 그러면, 저는 싫다고 해요. 하이힐을 신었을 때 느낌이 더 좋고, 더 커 보이고 싶어요. 큰 모습도 좋고 다 좋아요!”
우리는 신체를 잘 쓰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방향을 틀었다. 이다희는 샤를리즈 테론을 언급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. “<올드 가드>에 정말 멋있게 나오지 않았어요? 그런 액션이라면 온몸이 부서지더라도 하고 싶어요. <아토믹 블론드>부터 그런 액션에 최적화된 배우인 것 같아요. 그런데 김홍선 감독님이 다음 작품으로 여자 주인공이 산에서 감행하는 복수극은 어떻겠냐고 그러시는 거예요. <레버넌트>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. 몸이 너무 힘들 때 말씀하셔서 대답은 안 했지만, 다시 할지도 몰라요(웃음).”
이다희가 테론을 선망하듯, 누군가는 이다희를 선망한다. 이다희의 세계에서는 ‘언니’가 와글와글 산다. 스스로도 언니고, 언니들도 언니다. SNS나 팬 카페에 이다희가 남기는 글은 모두 ‘언니가…’로 시작한다.“ 친근한 느낌이 좋아요. 다희 씨, 선배님보다 언니, 누나라고 불러주는 게 좋고요. 행사에 가면 남자들은 거의 없었어요. 다 여자 친구들이다 보니 언니처럼 챙겨주고 싶어 언니라는 호칭을 쓰게 됐어요. 나이가 많아 언니가 아닌, 그냥 언니.” 스스로에게 덕질 DNA가 있다는 건 극구 부인했지만 이다희는 특정 언니들에게 빠져 있다. “<검블유>를 함께 한 혜진 언니, 수정 언니 너무 멋져요. 배우로서도 인간으로서도. 혜진 언니는 거침없는 스타일이고 수정 언니는 조곤조곤 자기표현이 명확해요. 다른 성향이지만, 그렇게 달라서 잘 맞아요. 중간에서 저는 사랑둥이죠(웃음). 언니들이 많이 예뻐해줬어요. 예쁨받는 것을 아니까 저도 언니들에게 잘하고 싶고.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언니들이에요.” 이 대목에서 이다희는 그 감정에 진심인 얼굴이 됐다. “솔직하게 표현하고 보여주는 걸 당당히 여기다 보니 그러한 ‘여성상’ 역시 선호해요. 인스타그램 자체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서로 공유하고 멋진 모습을 닮아가는 게 지금은 옳은 것 같아요. 질투하는 게 아니라 박수를 보내고 서로에게 배우고. 저도 그런 인물이 되고 싶고 누군가를 보며 그렇게 되고 싶어요. 그러다 보면 다 같이 성장해서 멋있는 여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?”

CREDIT
출처 보그코리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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